수다꽁
1장

CHAPTER 01 — NDP

세상의 모든 '갑'과 '을'은 이 한 단어로 갈린다

THE LOGIC OF NO DEAL POWER

밤 10시였다.

밤 10시였다. 업장의 마감 청소를 하는 건 항상 내 일이었다.

둘째 24개월짜리 아이는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도 아이를 재운 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이가 엄마를 가장 찾을 밤 시간에 남의 가게에 직원으로 있었다. 오전 9시 반부터 밤 10시 까지.

10대 때부터 먹고 싶은 걸 참고 철저히 닭가슴살이 주식이었다. 육상 엘리트로 체대를 졸업하고, 평생 운동을 가르쳐왔다. 1:1 PT가 주 수입원인 헬스 트레이너, 시간당 요금을 조금씩 올려 가는 것이 커리어가 성장한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 '조금씩'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그건 한참 뒤에야 알게 될 일이었다. 더 좋은 운동 선생님으로 인정받으려면 내 몸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1년을 전념해 보디빌딩 대회에 나갔다. 해냈다. 트로피가 8개였다. 보디빌딩 대회 3개, 전부 수상. 35세 애 둘 엄마의 신분으로 눈물겹게 했기에 나는 내가 옳다고 믿었다.

타인이 주인인 헬스장에서 온갖 잡무를 도맡아 했다. 내일도 9시에 출근할 것이다.


1년 반 전부터 남편은 자꾸 이상한 말을 했다. "같이 놀자. 그렇게 어렵게 살지 않아도 돼."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뭔가가 굳었다. '그들은 나와 달라. 그 방식은 내 방식이 아니야.' 나는 모르는 사이에 남편과 남편의 동업자를 '그들'로 만들고 있었다. 가족을 내 마음속에서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나는 내 방식을 지켰다. 더 열심히 스스로를 채찍질 했다. 더 혹독하게 몸을 만들었다. 더 많은 시간을 헬스장에 바쳤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모르겠어서 더 어렵게 굴었다. 그런데 이제야 깨닫고 보니, 나는 나를 을로 협상하는 게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었던 거다. 시간을 팔며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자유로운 갑으로 삶을 즐겨도 된다'는 말 자체가 두려웠다. 낯설었다.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밀어냈다.

1. 세상이 나에게 가르친 것들

생각해보면, 나는 평생 을이 되는 법을 배우며 자랐다.

학교에서 배운 것: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교과서에 따라 공부한다. 착하고 성실하면 인정받는다. 참으면 기회가 온다. 암기 시험을 치고 1등과 100등까지 승자와 서열이 있다.

직장에서 배운 것: 제 때 출근하고 주어진 일을 잘하면 된다. 윗사람 말을 잘 들으면 된다. 인내하고 오래 버티면 된다. 상사와 부하가 있고 사내 정치와 계급이 있다.

성장 환경: 아빠와 엄마는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며 매일 싸웠고 한 가족이 한 편이었던 적이 없다. 부모님 소란이 싫어서 기숙사 고등학교로 도망을 갔고, 타 지역 대학을 갔고, 25살에 출산을 했다.

심지어 결혼을 앞둔 24살에 주변에서 들은 말은 이랬다. "신혼여행에서부터 기선을 잡아야 해." "납작하게 애교를 잘 부리는 게 남편 다루는 방법이야." 이 말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그 말 자체가 이미 을의 사고방식. 기선을 잡거나 납작해야 한다는 건, 부부 관계를 처음부터 한 팀이 아닌 적과의 협상의 테이블로 보겠다는 것이고 — 그 테이블에서 누군가는 갑이고 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사회가 가르친 것들은 전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적대시 하고 경쟁하라. 협동하는 팀을 이루지 마라. 서로 치고 받는 노동자 계층에서 이탈하지 마라.

내 몸과 시간을 갈아 넣는 것이 미덕이고,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은 욕심이고, 팀을 이루려는 것은 누군가를 이용하려는 검은 짓이고, 평범의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은 불안정하거나 무모한 사람으로 보였다. 계급과 순위에 순종해야 했다. 그 틀을 벗어나는 잘못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최저시급에 미달하는 박봉을 받으며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도, 헬스 업계의 이 구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성실했기에. 노동으로 땀흘려 돈을 벌었기에. 무지외반증이 와도. 24개월 딸아이가 엄마 없이 다른 집에서 돌봄 받다가 잠들어도. 열심히 내 일을 하는 엄마인 나는 옳았다. 나는 을이었다.

을은 내가 정한 나의 정체성이었다.

2. '그들'이 보여준 세계

남편과 동업자는 잘 되던 숙박업을 버리듯이 접었다. 백수로 지내며 다른 답을 찾아 낼 것이라며 성인 교육 시장에서 매달 교육비를 식비보다 많이 쓰겠다는 선언을 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사업한다고 설치면 집안이 망한다던데 어떡하나.' 걱정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 경계였다.

그들이 성장하는 게 눈에 보일수록, 나는 더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더 많은 PT수업 일정을 잡았다. 더 혹독하게 식단을 지켰다. 더 바쁘게 살며 더 오래 헬스장에 남아 있었다. 24개월 아이는 남편의 동업자 집에서 주 3-4일을 잠들었다. 엄마가 데리러 가도 집에 안 가겠다고 거부를 하여, 오늘도 아이를 재워 달라며 맡겨둔 채 아이가 없는 집으로 퇴근하는 이상한 날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안다. 그건 커리어를 위한 열심이 아니었다. 금전적 수익을 만들어 가족에게 돈을 안기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기적인 도망이었다.

그들이 맞을까 봐. 내가 틀렸을까 봐. 살아온 방식 전체가 흔들릴까 봐. 을이 아닌 방식으로 살며 자유롭게 돈을 벌자? 단순히 직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평생 믿어온 인생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 같은 공포다. 그래서 내가 나의 갑이라는 자유를 안 믿고 싶었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 앞에서 더 노동으로, 더 몸으로, 을의 세상으로 열심히 도망갔다. 그게 내가 아는 유일한 삶의 방식 이었으니까.

3. 하버드가 만든 개념, 내가 뒤늦게 이해한 언어

그 와중에 남편의 동업자가 이 단어를 꺼냈다.

BATNA.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1981년 하버드 대학교 협상 프로젝트(Harvard Negotiation Project)에서 로저 피셔(Roger Fisher)와 윌리엄 유리(William Ury)가 쓴 『Getting to Yes』에서 나온 개념이다. MBA 교과서에 실린 협상학의 고전 용어. "협상이 깨졌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대안."

그때는 흘려들었다.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협상? 나는 PT 선생님인데. 언니는 이걸 이렇게 번역했다.

No Deal Power. 협상이 없어도 내가 괜찮을 힘.

그리고 이 질문을 던졌다.

"이 협상이 깨지면, 누가 더 아쉬운가?"

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었다. 내 수업이 취소되면 누가 더 아쉬운가. 내가 빠지면 헬스장 대표가 더 아쉬운가, 내가 더 아쉬운가. 나의 시간당 요금이 협상될 때, 나인가 고객인가.

전부 나였다.

나는 항상 내가 더 아쉬운 협상을 해왔다. 그게 내 삶의 구조 전체였다.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자.

4. 그리고 딸이 먼저 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 2025년 5월. 첫째 아이가 사업과 SNS를 시작했다.

초등학생 4학년이었다. 자격증은 커녕 기초 학력도 없었고, 경력은 당연히 없었고, 그냥 아이였다. 그런데 딸의 사업은 잘 되었다. NDP를 기반으로 설계된 자유로운 구조의 자동수익 사업이었다. 그 이야기를 SNS에 한 달에 한 번쯤 올렸다.

내가 팔짱을 끼고 '그들과 너네들 끼리 해 봐, 얼마나 되나 보자' 하며 지켜보던 그 세계에 아이가 먼저 갔다. 고정 관념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두고, 아이는 인플루언서가 되며 삶의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계로 갔다.

2026년 7월. 엄마가 트로피를 위해 최저 시급도 못 받으며 아등바등했던 1년간, 아이의 인스타그램은 고작 릴스 13개로 1.5만 팔로워를 넘겼고, 오프라인 사업은 누적 매출 1억을 만들었다. 순 수익은 3천 만 원 돌파. SNS 수익도 3천 만 원을 돌파. 1년에 6천 만 원이 넘다니. 초등학생 딸 아이가 나보다 더 벌었다는 그 이야기를 듣는 날 뭔가가 무너졌다.

나는 처음으로 물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 이러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아직 하지 않겠다. 딸이 무엇을 했고 왜 시장이 그 아이를 믿었는지, 그리고 그동안 내가 딸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었는지 — 그건 내가 가장 늦게 이해한 것이고, 나를 가장 아프게 이해한 것이다. 7장에서 전부 이야기하겠다.

지금은 이것만 말하겠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의 방식이 틀렸을 가능성을 마음에서 밀어내지 않았다.

5. 자기 자신에게 갑이 된다는 것

커리어 크라이시스(Career Crisis: 자신의 직업이나 진로에 대해 깊은 회의감, 불안, 방향 상실을 느끼며 심리적 갈등을 겪는 시기 )는 밖에서 오지 않는다.

기존에 몸 담았던 업계의 시장이 변한 것도 아니고, 내 실력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본질은 이것이다.

내가 평생 스스로를 을로 협상해왔다는 것을 처음으로 직면하는 것.

나는 내 시간과 노동을 팔았다. 내 몸을 소모품처럼 썼다. 내 가치를 내가 먼저 월 몇 백 못 버는 사람으로 깎았다. 그 자리에 취직하려고 고용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것을 안정이라 하고 성실함이라고 불렀다. 그게 맞는 거라고, 그게 옳은 거라고, 그게 인정받는 방법이라고.

NDP는 단순히 사업 전략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협상에서, 내가 갑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얼마만큼의 삶을 허용하느냐 — 그 허용의 크기가 실제로 주어지는 기회의 크기를 결정한다. 나는 지금껏 너무 작은 허용 안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 작은 허용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내 편인 사람들을 평범이라는 기준으로 배척하며 '그들'로 만들었다.

NDP는 네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 1) 자산 여유 (Cushion) — 이 상황이 깨져도 버틸 수 있는 현금과 자원.
  • 2) 대체 경로의 수 (Routes) — 이 회사, 이 고객, 이 방식 말고 갈 수 있는 길의 개수.
  • 3) 회복 속도 (Recovery) —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속도.
  • 4) 감정적 비집착 (Detachment) — '이것 아니면 안 돼'라는 절박함에서 벗어나는 힘.

이 네 개를 처음 점검했을 때, 홀로인 나는 전부 0에 가까웠다.

트로피가 8개인데 한 달치 생활비 여유가 없었다. 대회에 나가는 비용이 월급을 넘어 섰었기에 카드 빚을 갚으려면 갈 수 있는 길은 1:1 PT 하나뿐이었다. 가족을 '그들'로 내몰며 스스로 혼자의 경제를 꾸리려던 나는, 이 길이 무너지면 다시 설 방법이 없어서, 무너지지 않으려고 몸을 더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 방식이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이 결국 가족과 점점 멀어짐으로 이어졌다.

NDP의 이 네 개를 어떻게 실제로 설계하는지는 9장에서 전부 다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채우는 게 아니라, 내 네 칸이 지금 얼마나 비어 있는지를 정직하게 보는 것이다.

6. 이제 내 인생을 내가 협상할 차례다

인생은 기세다.

어느 속도로, 어느 방향으로, 어느 크기의 삶을 내가 나에게 허용하느냐가 기세를 만든다. 그 기세가 NDP를 만든다. 그리고 그 NDP가 쌓이면, 학력 경력 자격증 뭐 하나 없는 초등학생이 한 마디 해도 시장이 움직인다.

나는 지금껏 세상이 가르친 대로 살았다. 선한 순종자로. 시간을 팔며. 몸을 갈며. 그게 옳은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그건 나를 어떠한 시스템 안에 묶어두기 위해 세상이 가르친 언어였다는 것을.

앞으로 이어질 장들에서, 나는 내가 나를 을로 만들어온 패턴을 하나씩 해부할 것이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믿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관계에서 먼저 접는 습관. 내 시간을 싸게 파는 구조. 내 편을 적으로 만드는 심리. 아이에게 잘못 물려주고 있던 것.

전부 내 이야기지만, 아마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나에게 다른 질문을 한다.

"이 협상이 깨지면, 누가 더 아쉬운가?"

그리고 그 아쉬운 쪽이 더 이상 '나'이지 않도록 — 지금부터 다르게 살기로 했다.

COACHING QUESTIONS — 나의 NDP 점검 리스트

이 챕터를 덮기 전에, 지금 당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점검해 보라.

Q1. 지금 내가 몸담은 회사·직업·관계에서, 상대방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인가? 그 숫자가 많을수록 내 NDP는 낮다.

Q2. 내가 지금 이 자리를 떠나도 갈 수 있는 곳은 몇 개인가? 솔직하게 적었을 때 0에 가깝다면 —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

Q3.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어느 크기의 삶을 허용하고 있는가? 더 큰 삶을 제안받았을 때, 나는 받아들였는가 아니면 본능적으로 밀어냈는가?

Q4. 내가 쏟고 있는 열심은 나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더 열심히 하는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만들고 있는가?

Q5. 앞으로 6개월, 내 NDP를 한 단계 올리기 위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행동 한 가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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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짜 시급 계산하기

숫자를 넣어야 다음 이야기가 열립니다.